건설업체들의 부도 공식이 바뀌고 있다. 그동안은 주택 불경기 여파로 주택 사업 비중이 높았던 업체들이 타격을 받고 무너졌다. 하지만 최근에는 주택뿐 아니라 토목공사 물량까지 줄면서 토목공사 비중이 높은 업체들도 하나 둘 쓰러지고 있다.
특히 중견건설업체들은 최저가 낙찰제에 따른 가격 경쟁력 감소, 4대강 공사 이후 줄어버린 수주 물량, 상대적으로 약한 해외수주 경쟁력 때문에 이제 더는 살아날 구멍이 없는 상황이라고 토로한다.
◆ 주택 업체에서 토목업체로 바뀌는 부도 공식
2000년대 중·후반 워크아웃과 법정관리 등 소위 ‘부도’가 난 건설업체들의 공통점은 주택사업의 비중이 높았다는 점이다. 2000년대 초·중반 주택 활황기 때 사업을 확장했다가 2000년대 후반 들어 주택 불황에 속절없이 무너져갔다.
올해 시공능력평가 83위의 신일건업은 지난 2009년 4월 워크아웃을 신청했다. ‘신일 유토빌’이라는 브랜드로 주택사업을 위주로 진행해왔지만, 부동산 불경기가 시작되면서 타격을 받았다. 신일건업은 워크아웃에서 졸업했다 다시 워크아웃을 신청하는 우여곡절 끝에 지난 2일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 ▲ 정부 발주의 공사 현장 모습/조선일보 DB
지난 2009년 3월 워크아웃에 들어간 동문건설(79위)도 주택 불경기 파도를 넘지 못했다. ‘굿모닝 힐스’라는 브랜드로 주택 사업을 주력으로 한 중견 업체였다. 2009년 4월 주택 비중이 90%에 육박했던 우림건설도 역시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2010년 들어서는 상황이 더 나빠졌다. 한일건설(49위), 중앙건설(89) 등이 무너졌고 나름 주택사업에서 이름을 날리던 벽산건설(28위)이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벽산건설은 ‘블루밍’이라는 브랜드 등을 통해 매출에서 주택 비중이 70%를 차지했었다. 남양건설(52위)도 2010년 말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최근에 워크아웃·법정관리에 들어가는 기업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토목사업을 위주로 진행하는 업체들이 많다. 대표적인 곳이 삼환기업(31위). 삼환은 매출에서 주택부문은 20%고 토목공사(60%)와 플랜트(10%) 가 대부분이었다. 삼환은 올해 7월 워크아웃을 신청했다가 며칠 후 다시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남광토건(35위)도 대표적인 토목 중심의 업체였다. 남광토건은 철도·교량 등 토목사업 비중이 전체 매출의 절반을 차지했다. 하지만 지난 8월 2일 법정관리를 신청해 회생계획안이 심사 중이다.
동양건설산업과 고려개발도 토목 위주의 업체 중 부도가 난 사례다. 두 업체는 토목 공사 발주 물량이 급감하자 주택사업에 뛰어들었다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을 막지 못해 법정관리와 워크아웃에 각각 들어갔다.
◆ 최저가 낙찰제·4대강 사업에 무너지는 중견 건설업체
건설사의 위기가 이렇듯 토목업체로까지 번진 데에는 다양한 원인이 있지만, 시작은 최저가 낙찰제라고 업체들은 입을 모았다. 국가가 발주한 사업을 따내기 위해 대형사들과의 경쟁해야 하는데 규모의 경제에서 밀리다 보니 수주를 위해서는 출혈 경쟁을 해야 했다. 회사는 곪고 토목공사 수주 물량은 계속 줄었다.
한 중견건설업체 관계자는 “정확한 데이터를 살펴봐야 알겠지만 최근 2년 사이에 토목공사 물량은 20~30%가량 급격히 줄었다”며 “주택까지 불경기라 더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말했다.
4대강 공사도 토목 업체들의 위기에 한 요인으로 지목됐다. 4대강 공사는 국가가 발주한 22조원 규모의 대형 토목공사다. 하지만 대부분이 턴키공사로 발주돼 대형업체들이 수주해 가면서 중견업체들이 설 자리는 없었다.
4대강 공사 이후 재정 상황이 녹록지 않아 각종 관(官) 공사 물량이 감소한 점도 중견건설사의 가슴을 막막하게 하고 있다.
한 중견 건설업체 관계자는 “4대강 이후 토목공사가 거의 없다”며 “도로는 없고 철도만 조금 나오는 상황인데 주택 미분양까지 있고 해서 뭔가 새로 시작해볼 수 있는 게 없다”고 말했다.
◆ 중견사들 “해외 수주는 남의 일”
대부분의 건설사들이 살기 위해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지만, 극히 일부에 적용되는 이야기다. 특히 규모와 돈에서 밀리는 중견건설사들에게는 꿈도 꾸기 어렵다.
- ▲ 건설업체들의 경기실사지수. 대형 업체들보다 중견업체들의 상황이 더 나쁨을 알수 있다/조선일보 DB
한 중견 건설사 관계자는 “가장 중요한 것이 자금력과 인력인데 부도난 업체에 능력있는 인재들은 해외 사업을 확장하는 대형사로 모두 이동한 상태”라며 “사실상 수주전에 참여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최근 법정관리가 끝난 한 중견업체는 “과거와 같이 해외사업을 회복하기가 쉽지 않다”며 “주택 경기도 안 좋은데 사실상 살아날 구멍이 없다”고 말했다.
해외건설협회 관계자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으로 분류해 자료를 집계하는데 중소기업은 올해 기준으로 전체 수주금액의 6%에 불과하다”며 “이나마 대부분이 대기업의 하청 물량”이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임에도 정부가 중견건설업체를 돕겠다고 나서고는 있지만 실질적인 지원은 전무한 상태다. 국토부는 정확하게 중견건설업체들의 해외 수주 물량 등을 파악조차 못 하고 있었다.
국토부 해외건설정책과 관계자는 “중견업체들에 대한 지원 프로그램은 있지만, 정확히 얼마나 기업들을 도와줬는지는 파악이 안 되고 있다”며 “중견업체들이 향후 더 많은 금액을 수주해 나갈 것으로 생각하며 위기라고 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