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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달새 3차례 전복 사고…‘안전문제’ 도마에 인력부족·전문면허제 부재 등 사고원인 꼽혀
최근 석 달 새 서울 시내 공사 현장에서 수십~수백t짜리 천공기(대형 굴착기: 지하공간 공사를 위해 지반에 구멍을 내는 기계)가 세 차례나 무너지면서, 건설 현장 주변 안전 문제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난 13일 오후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한 빌딩 공사 현장에서 높이 15m, 무게 53t짜리 천공기가 넘어져 옆 건물 외벽을 치고 들어가는 사고가 났다. 당시 건물 안에 사람이 있었다면 큰 인명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었던 아찔한 순간이었다.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은 현재까지 기계 결함으로 추정된다. 경찰 관계자는 “높낮이를 조절하는 유압기 두 개 중 하나가 압력이 빠져 주저앉으면서 15m 높이의 드릴이 기울어 옆에 있던 빌딩 벽을 치고 들어갔다”고 말했다. 문제의 천공기는 일본에서 중고로 수입해 10년째 사용한 것이지만, 일본에서 언제 제작된 것인지는 업체 관계자들도 잘 모르고 있다.
앞서 지난해 11월16일에는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의 한 공사 현장에서 높이 30m, 무게 120t짜리 천공기가 차도로 넘어지면서 승용차를 덮쳐 한 명이 숨졌고, 12월11일에도 강서구 마곡동의 한 교량 공사 현장에서 같은 규모의 천공기가 넘어져 공사 인부 한 명이 다쳤다.
이처럼 똑같은 사고가 잇따라 일어난 것을 두고, 전문가들은 천공기 운전기사 개인의 잘못에 앞서 하도급 업체에 대한 단가 인하와 공기 단축 압박 등 구조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박종국 전국건설노조 노동안전국장은 “유압기가 주저앉기 전에는 보통 보름이나 한 달 전부터 유압 균형이 맞지 않는 현상이 나타난다”며 “이런 현상이 감지되면 공사를 중단하고 유압기 부품을 교체해야 하는데, 공사가 늦어지고 수백만원가량의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상황을 원치 않은 하청업체가 공사를 강행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지난해 말 일어난 두 차례 천공기 사고도 비용 절감에 따른 인력 부족이 원인이라는 점을 들어, 이번 사고와 같은 맥락으로 보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천공기 한 대에는 기사와 보조기사 등 세 명이 배치되어야 하는데 최근 들어 인력 절감 요구가 커지면서, 기사 한 명만 배치하는 등 무리하게 운용을 해온 것이 사고를 불렀다”며 “이번에 일어난 사고도 비용 절감이 원인이라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천공기 안전검사 규정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천공기 한 대가 한 해에만 수십 곳의 공사 현장을 누비고 있지만, 현행 법률상 안전검사는 3년에 한 차례만 받도록 돼 있다.
천공기 사고가 잇따르자 국토해양부는 지난해 12월 천공기 조종 면허를 신설하는 내용의 건설기계관리법 시행규칙 개정령을 냈다. 지금까지는 기중기 면허만 있어도 천공기를 운전할 수 있어, 기사들은 위험장비인 천공기에 대한 안전교육을 따로 받지 않았다. 하지만 법률 시행은 올해 하반기에야 가능하고, 전국적으로 약 3300대에 이르는 천공기를 운전하는 기사들이 면허를 취득할 때까지는 더 많은 기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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