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건설업계가 중동 리비아 사태와 프로젝트파이낸싱(PEF) 부실 등 안팎의 악재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싱가포르 시장이 해외건설 부문의 효자 노릇을 하고 있다. 국내 건설사들이 중동을 대신해 싱가포르에서 잇따라 ‘수주’라는 낭보를 전해오고 있는 것. 건설업계에선 이미 지난 5일 기준 싱가포르의 올해 누적 수주액이 지난해 연간 실적을 넘어섰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싱가포르는 도심 인프라 등에 대한 개발사업에 적극 나서면서 올해 발주량이 지난해 보다 20%쯤 많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에 따라 전 세계 건설사들의 사활을 건 수주전이 싱가포르에서 펼쳐지고 있다. 심지어 국내 건설업체간 출혈 경쟁이 벌어지는 징후까지 보이고 있다.
S건설 관계자는 “싱가포르에 첫 진출하려는 국내 건설사들과 함께 한동안 잠잠했던 일본·호주·유럽 업체들이 올해들어 싱가포르 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하고 있다”며 “국내 건설사들이 꾸준히 수주는 하고 있지만 경쟁이 심해지면서 앞으로는 수익성을 고민해야 할 상황에 놓였다”고 말했다.
- ▲ 싱가포르에서 개발사업이 가장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마리나 베이 지역의 야경. 활처럼 휜 건물 3동이 원반을 떠받치고 있는 듯한 쌍용건설의‘마리나 베이 샌즈호텔’뒤로 대형 크레인이 치솟아 있다. (자료: 쌍용건설)
◆ 한국 건설사 싱가포르 수주 ‘활발’..이미 지난해 전체 실적 넘어선 듯 7일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올해 국내 건설사들이 싱가포르에서 수주한 공사 총액은 총 10건, 13억2219만 달러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 한해 동안 수주한 12건, 16억2359만 달러의 81% 수준이다.
업계에서는 이미 수주는 했지만 시간차로 인해 협회에 신고되지 않은 공사 물량이 10억 달러 가량으로 보고 있어 이를 포함한다면 8월초(5일)까지 실적이 23억달러 이상으로 이미 지난해 전체 실적을 넘어선 것으로 보고있다.
GS건설이 싱가포르 진출 첫해 만에 지하철 공사 2건(약 4000억원)을 수주했고
삼성물산(000830) (75,700원 ▼ 4,100 -5.14%)도 싱가포르 SLNG 탱크 선석공사 등 올해 총 3건의 공사를 따냈다. 현대건설도 사우스비치 복합빌딩 공사(약 7000억원) 등 4건의 공사를 수주했고 쌍용건설은 W 호텔 상업시설 공사를 따냈다.
이같은 성과는 국내 건설사들이 올해 싱가포르의 공사 발주물량이 많아질 것으로 예상하고 싱가포르에 영업력을 집중했기 때문. 업계에서는 싱가포르 전체 발주예정공사는 총 175억 달러 가량으로 국내 건설사들이 주로 진출하는 토목분야에서만 65억 달러어치에 달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대형건설업체 한 관계자는 “이미 상당수의 공사가 발주됐지만 여전히 수십억 달러 어치의 공사가 발주 예정 상태”라며 “상반기 지하철 공사 발주가 대부분 완료됐으나 아직도 토목 부문에서 30억 달러 가량은 남아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어 각 업체별로 추가 수주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 “싱가포르를 향해 앞으로”…국내외 건설사들 극한 대결해외 건설사들의 싱가포르 진출도 활발하다. 한때 아랍에미리트(UAE)의 두바이나 아부다비로 해외 영업 중심을 옮겼던 일본 업체들은 지난해부터 싱가포르 시장으로 되돌아오기 시작했다. 올 초 일본 동북부 지진으로 주춤하기는 했지만 최근 국내 상황이 다소 안정화되자 싱가포르에 대한 영업력을 집중하고 있으며 중국과 호주 건설업체들도 공격적인 영업 전략을 펼치고 있다.
올해 싱가포르의 최대 공사였던 싱가포르 육상교통청(LTA)이 발주한 도심 지하철(DTL) 3단계 공사는 국내업체와 일본·중국·호주 업체들이 대부분의 공사를 가져갔다. 35억 달러 규모, 총 17건의 발주가 예정된 가운데서 지난달까지 15건이 집행 완료됐는데 이 중 5건을 국내업체들이 수주했으며 일본은 4건, 중국이 2건을 수주했다.
H건설 관계자는 “가격 경쟁력이 뛰어난 중국과 함께 최근에는 레이톤(Leighton)사와 같은 기술력이 뛰어난 호주 업체들도 적극적으로 수주전에 뛰어들고 있다”고 전했다.
- ▲ 현대건설이 최근 수주한 7000억원 규모의 싱가포르 사우스비치 복합 빌딩 조감도. (자료: 현대건설)
◆ 실적은 좋지만…경쟁 심화·수익성 악화 우려도업계에서는 국내 건설사들의 싱가포르 집중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중동 지역과 마찬가지로 국내 건설사간의 과열·출혈 경쟁이 재현될 수 있다는 것.
실제로 올해 발주한 지하철 공사에서도 국내 업체들은 공사구역마다 평균 3~4개 업체가 입찰에 참여했고 대부분 국내업체들이 최저가(最低價) 군(群)을 형성할 정도로 국내 건설사간의 저가 입찰 경쟁이 심했다고 한다.
S건설 관계자는 “최근 국내업체가 수주한 빌딩 공사에서는 발주처가 막판까지 경쟁했던 국내업체 2곳의 CEO까지 동시에 불러들여 가격협상을 했다는 얘기도 있다”며 “국내건설사들의 수주 경쟁이 해외 업체와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심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건설사 관계자도 “처음 진출한 업체의 경우 손해가 날 정도로 가격을 낮춰 입찰에 참여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 현지화(Local化) 통해 조달 부문 강화…다양한 사업방식 마련해야 업계에서는 단순히 가격 경쟁력을 통해 싱가포르 건설시장에 뿌리를 내리려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국내 건설사들이 시공기술 면에서 크게 뒤지는 것이 없는 만큼 철저한 현지화 전략을 통해 조달 비용을 줄이고 설계 부문에서 차별화하면 수익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 단순히 이익을 줄여 입찰 가격을 낮추겠다는 것은 오히려 건설사에 독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국내 한 대형건설사의 올 상반기 매출원가율이 국내외 수주 경쟁 심화로 90.1%까지 높아졌다. 이는 일년 전에 비해 0.4%포인트 오른 것. H건설 관계자는 “지하철·매립·터널·빌딩공사 등은 모두 국내 업체가 잘한다고 싱가포르 발주처들도 잘 알고 있다”며 “하지만 조달 부문에 대해서는 국내업체가 해외업체보다 못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일반적인 토목 공사나 개발 공사가 아닌 싱가포르 발주처가 원하는 방식으로 공사를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해외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지난해 세계 3위의 건설사인 프랑스의 보이그(Bouygues)사는 싱가포르 최대 스포츠 허브 센터 공사를 민간자본을 투자하되 운영권을 통해 수익을 얻는 민관합동사업으로 수주했다”며 “국내 건설사도 이 같이 기존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업에 참여하는 전략을 세워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